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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거울 도시 2012. 2. 24. 17:04

    일을 마치고 나선 길. 순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벌써 겨울이구나.'

     

     평소같으면 술에 취한 사람들로 요란스러워야 할 거리가 텅 비었다

    날이 급작스레 차가워진 탓일까. 마치 8년전 눈내린 겨울의 서울 밤거리인 것만 같다.

     머리가 크고 처음으로 가본 서울은 흑백의 도시였다. 백색광을 발하는 중세 고딕양식의 가로등, 그 아래 끊임 없이 발광하는 눈과 늦은시간의 텅빈 도로를 미친듯이 질주하는 검은 형체들. 하늘을 뒤덮은 회백의 구름과 건물의 어두운 그림자. 유동유색의 빛이라고는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사내의 담배불 뿐인 그 도시의 빛깔. 그 도시의 차가움. 그 도시의 낯설음. 그것이 그날 그대로 내게 남아 오늘의 도시를 뒤덮은 것만 같다.

     늘상 그렇듯 처를 정해두지않고 걷는 중에 익숙치 않은 골목이 눈에 띄었다.

    空洞(공동).

     도중에 꺾여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구멍처럼 보였다. 텅빈 충만. 서성이던 발걸음을 돌려 한발 내딛자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또 한발 내딛자 정해종 시인의 방전하는 밤이 떠오른다.

     아무도 없는 공동에 울리는 타인의 발자욱 소리. 주인잃은 발자국에 눈은 밟히고 또 밟혀 굳고 차건 얼음 조각으로 남았다.

    치기 어린 뜨거운 심장은 '달려'를 연호하지만, 하지만, 나는 뛸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예외다.'

     -'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잖아.'

     '나는 언제나 예외다.'

     -'치기 어린 것은 내가 아니라 나다.'

     '나는... 나는 언제나 예외다'

     -'나는... 나는...'

     

    순간 맹렬히 불어닥치는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제대로 디디어 설 수 없는 얼음판 위에서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툭-

     

    무엇엔가 금가는 소리가 났다. 금이 간 곳은 얼음판인가, 내 머리인가, 어디인가. 몸을 일으켜 쓰라린 곳을 몇번 문지르곤 다시 주체못하는 걸음을 옮겼다.

     꺾인 골목에서 닿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거부하는 이 길에 끝이란 없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다.

    다시금 아까 찧은 어딘가가 쓰라렸다. 가로등 불조차 유리창에서 새어나오는 아주 작은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

     -'끝이다.'

     '‥‥‥.'

     -'끝이다.'

     '‥‥‥.'

     -'끝이‥·'

     '아니다. 계속 나아간다.'

     -'‥‥‥.'

     '나는 언제나 예외다.'

     -'횡단법'

     '‥‥‥?'

     -'내가 걷는다. 곧죽어도 걷는다. 그러니 난 그만 쉬어야겠다'

     

    -쩍-

     

     순간 빗장뼈에 금이갔다. 23번째 갈비뼈가 움찔거렸다.

    내 몸을 지탱하던 척추가 무너져 내렸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차가운 새벽공기에 얼어 눈으로 내렸다.

    전봇대옆 담벼락에 기대어 눈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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