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가 컴퓨터 화면의 하얀 공백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까지 하얗게 텅 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드라마에서는 잘만 하던데... 역시나 손에 잡히는 뭔가가 부족하다. 약간의 부족함과 먹먹함. 이에는 연달아 내리치는 비가 한 몫 했으리라.
이럴떄 머리를 탁 틔워주는 것으로는 차가 재격이다. 녹차든 홍차든 어떠한 차던지 혹은 그저 허브잎 하나 넣은 찬 물 한 컵이어도 좋다.
차는 좋아 하지만 재대로 끓일 줄은 모른다. 녹색 빛의 싱그러움이 언뜻 스쳐간 듯한 향.. 이런 향은 어떻게 내는 건지...
그런 것은 모른다. 다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가장 쉬운 방법, 보리차 끓이는 방법 뿐이다. 끓여서 기성 녹차포를 띄우고 남들은 써서 비위가 상해 못마실 정도로 진하게 우려낸 물을 차갑게 식힌다. 이때 보리차와 녹차의 차이가 있다면 우려내면 우려낼 수 록 보리차는 구수해지고 녹차는 비려진다는 것이다. 비리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저 내 느낌이니 남이 뭐라하든 알 바 아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주전자가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끓어 넘치는 주전자. 불을 줄이고 그 뚜껑을 열자 녹차의 진한 향이 훅 끼쳐온다. 얼마나 뜨거울까... 손가락을 넣었다. 물이 줄었나? 쫄아서 손가락을 조금 넣었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손목을 지나 팔꿈치, 어깨, 이윽고 늑골이 주전자에 닿았다.
좁은 틈을 비벼 턱, 입, 코, 눈, 귀. 머리를 다 집어넣었다.
순간 느껴지는 태울 듯 한 열기. 녹차향은 온데간데 없고 주전자 구멍에서 솟는 증기만 내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불에서 주전자를 내려 찬 물에 담궜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얼굴의 열기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