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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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1단상/장 2018. 1. 29. 23:19
1-몸을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오른쪽 귓구멍에 이명이 고였다.잠에서 깼다. 2-너는 어느 날인가, 고양이 같았다.길가에서 주워온 작은 소파. 넌 그 작은 소파에 몸을 끼워맞추듯 누웠다.마음에 꼭 찾을까. 늘상 그렇게 비비고 있었고 책을 읽다, 티비를 보다, 요리를 하다 돌아본 눈길에 너는 꼭 그렇게 있었다.딱 맞는 상자를 찾은 고양이처럼. 3-네 주위에 언젠가부터 소요逍遙하듯 아른거리는 기운이 있었다. 뭐랄까, 너무 먼 곳에서 손을 흔드는 듯한.나도 안녕을 머금었다, 삼켰다. 도살장 앞의 소처럼 곱씹었다.헤어짐은 소처럼, 슬슬 거닐 듯 그렇게 지나갔다. 4-신 새벽, 오랜만의 물에 화분은 탄산처럼 스스- 시원하다. 5-문득 깬 잠자리에 가슴께 들썩임이 주는 안도감은 이제는 없다.습관처럼 내뱉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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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일단 흐른다단상/장 2014. 4. 24. 07:51
시간은 일단 흐른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이 창조한 모든 중에 으뜸이리라. 그렇다고 마냥 흘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어디에곤 쌓인다. 오래된 책장 위에도, 움켜쥔 자욱이 그대로 남은 낡은 만년필에도, 그리고 사람에도 쌓인다. 그 이름은 추억일 수도, 기억일 수도, 혹은 악몽일 수도 있다. 악몽같았던 시간. 그것들은 다만 먼지같아서 되짚으려하면 부- 흩어졌다가, 잊고 지내면 어느 순간 다시금 쌓여 스치는 손길에 묻어나듯, 뇌리에 떠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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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장 2014. 4. 4. 00:52
너는 내 바다를 보고싶다 했었다. 나는 그러리라 다짐했었다. 다만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을 뿐. 다짐은 지키지 못했고 너는 날아갔다. 날아간다는 소식에 어디즈음 하늘을 봤고, 입은 열지 않았다. 네 이름으로 시를 쓴 적이 있다. 마치 꿈처럼, 다섯 자씩 네 연, 스무자의 짧은. 입을 다물 듯, 네게는 보이지 못했고 그것을 대신 본 이는 한동안 내 곁에 머물다 너와 같이 날아갔다. 역시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글을 쓰는데 글씨가 굵어져 읽기가 영 고되다. 둥글게 닳은 끝을 들어 심연기에 꽂아 돌려 깎는다. 네가 준 연필은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너는 내 생각을 대신해 종이 위에 닳아 사라진다. 지금도. 허나 너는 더는 없고,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소리내어 외치지 않더라도. 문득, 네게 준 반지는 어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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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단상/장 2014. 3. 25. 23:53
1- 너는 내게 폐허다. 한없는 약점이며 다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는 짙은 어둠이다. 2- 너를 향했던 내 행동은 타인의 눈에 나 자신의 족쇄가 되어, 네게서 거둔 뒤에도(혹은 내쳐진 뒤에도) 나는 다른 곳으로 손을 뻗을 수가 없다. 3- 둘로 어렴풋이 잘 지내기를 바랐지만 결국 너는 다시 하나가 되었고, 나는 더욱 비참해졌다. 두 사람의 연이라는 것이 본디 끊어질 수도,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나, 나는 전자가 내가 아님으로 거짓위안하며 네게 후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4- 세상이 너무나도 밝아져서 이전 같으면 음지에서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온다. 내 폐허의 얼굴과 내 폐허의 심경과. 화면 속에서 눈길이 스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5- 나는 네게 나도 내게 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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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투명 창이 좋다.단상/장 2014. 3. 23. 09:17
1- 나는 불투명 창을 좋아한다. 주말 아침, 느지막히 창 너머에서 얼굴 위로 바스락거리는 햇살에 깬다. 부신 눈을 비비며 지난밤을 생각한다. 내가 창쪽으로 누워 잤던가 방문 쪽으로 누워 잤던가. 늘 눈을 감고 방안에 울리는 소리를 좇다 보면 빙글빙글, 두어 평 남짓한 공간에서조차 방향을 잃고야 마는 것이다. 2- 멍하게 누워 거꾸로 창을 보자면 창밖은, 특히 흐린 날의 그것을 보자면, 왠지 춘천의 안개가 끼어있을 듯, 고성의 눈이 쌓여있을 듯, 원주 치악산자락의 구름이 내려앉았을 듯싶다. 천천히 창을 열면 아니나 다를까 공기는 맵고, 소리는 시고, 빛은 떫다. 나는 이 도시를 좋아하는데 도시가 나를 싫어하는지, 아니면 내가 홀로 싫어하는 것인지, 도무지 삭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3- 돌아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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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장 2013. 11. 13. 23:58
1- 기차역 가는 버스 안. 버스 창밖 넓은 논바닥에 무슨 풀인가, 이 가을에 트는 움이 무척이나 봄같아서 맞는 바람마저 마지막 겨울바람인 성 싶다. 그러다 조금 더 가까이로 흐르는 음영이 갈대인 것을 알고야 가을이구나 한다. 2- 익산가는 기차 안. 유리에 이마를 대고 앉자니 창에 김이 서린다.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을 뜯어내면 거리엔 김을 내뱉는 호빵통이 들어설 터이나, 달걀 한 판을 다 채워가는 판에 여전히 혼자인 손은 그 호빵도 들고 번갈아 뜨뜨 굴리기가 영 껄끄러울 것이기에,세상을 보는 눈 표정만큼이나 차갑게 굳은 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넣고는 말 테다. 할 말이 많아 긴 숨 이어쓰다 흔들리는 기차에 내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헛갈릴 즈음 기차가 서는 기척. 어디께나 왔나 두리번 거리는 차에 입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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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단상/장 2013. 6. 4. 08:32
1- 큰 따옴표가 들어가는 글은 어색하다. 생에 한번을 써본 적이 없다. 혼자서 뇌까릴 줄이나 아는 것이고, 기실 대화에 요령이 없는 것이 맞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그래서 그런 것인가. 아주 죽이고 기어서 들어가든지 아주 죽자고 쳐들고 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 저자세 아니면 고자세. 처세술인지 아니면 강대약, 약대강의 더러운 이중적 태도인지. 거기서 냉소가 나오고 종국엔 혼자 주르륵 풀어 쓰는 짤막한 글에도 무엇인가를, 최소한도 스스로 정도는 씹어줘야 글이 글같게 느껴진다. 이쯤되면 아마 병이거나 심성이 변태거나 그럴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비단 다르지 않다. 2- 생각은 골에서 한참을 묵힌다. 썩기 전 겨우 먹을 상태일 떄가, msg가 잔뜩 배어 나온 집된장 같은 말이 치덕치덕 나오는 게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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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22분단상/장 2013. 4. 5. 07:57
잠이 들 때 무슨 음악을 귀에 흘리고 있었는가 잠이 들 때 무슨 생각을 아프게 하고 있었는가 오랜만에 본 너는 다 늙어 앞이 보이지 않았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제사 품에 안기었던가 아픈 숨을 쉬는 너를 난 아프게 기쁘게 안았다 꿈 속에선 바라던 바 그대로 너도 나도 늙었고 내가 그렇게 바라던 바 그대로 그렇게 떠났다 너무 아프지 않았기를 너무 슬프지 않았기를 너무 외롭지 않았기를 너무 짧은 사랑은 아니었기를 덧. 더 상세하게 써서 기록으로 남길까도 싶었지만 내 감정이 다칠 것 같아 이만 적는다. 여전히 너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야 가슴이 텅 비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