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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1 그, 그리고몽상/현상 2022. 6. 26. 02:00
0-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잃었고 내 속에는 그만 남았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코끼리로 가득 차는 것처럼. 그가 바란 것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글로 그를 적어, 내린다. 1- 처음 본 것은 학기 초 교양 시간에서였다. 사진의 이해. 겉옷을 파고드는 바람이 아직 시린 겨울의 끝자락. 열린 문으로 넘나드는 바람에도 나는 굳이 맨 뒷자리, 문 옆에 앉았다. 혼자서. 사람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나는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치듯 휴학했었다. 그는 맨 앞자리에 친구들과 앉아있었다. 칼같이 계산해 전역과 복학 시기를 맞추었는지, 아직 밤송이 같은 뒤통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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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바깥을 보면서 생각했다단상/단 2022. 6. 16. 22:41
이른 잠에서 깨 물을 찾는다는다 한뼘이 넘는 긴 물잔이 비어있다 이제 이불을 차고 나가야 하고 이래서 자리끼는 중요하다 잔을 쥐고 더음어 나아간다 한 톨의 빛도 없는 밤 관이 있을 법한 곳에 물잔을 대충 밀어넣는다 정수기의 * 표만 등대처럼 반짝거린다 얼마나 찼는지 알 길이 없어 손가락을 집어 넣는다 고르륵 차오르던 시원한 소리가 손가락 끝에 닿는다 잔을 때고 깜빡이던 불이 꺼지고 물때를 놓친 낚시꾼처럼 급하게 차오르는 어둠에 고립된다 덜컥거리며 겨우 방으로 돌아와 창의 발을 걷는다 검푸를 바깥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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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잡상/씀-옮김 2018. 1. 29. 23:35
새벽 네시, 차도 끊기고해서 꽈 ㄴ은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담배를 사 근처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칙- -이거 따는 소리가 꼭 오래된 화분에 물주는 것 같지 않냐?ㄱ이 말했다. -네, 사하라 선인장씨. 장마 실컷 즐기세요.ㄴ이 답했다. 아닌게 아니라 막 장마처럼 술을 쏟아부은 뒤였다. 칙- 새로 산 라이터가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부싯돌을 아무리 굴려봐도 불꽃 부스러기만 날릴 뿐 끽연은 요원해보인다. 문득 든 생각에 ㄴ이 말했다.-그... 라이터 바닥에 막 긁어서 튄 불똥을 잘 모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자냐?ㄱ이 흘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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