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긴 글

복숭아

opener_ 2012. 2. 24. 16:45


 

 

복숭아.

넌 복숭아였다. 달리 표현 할 말이 없고, 또 필요도 없었다.

 

복숭아 그 자체였다.

 

이따금 만나 손을 만질 때면 너는 한 철의 복숭아 같았다.

잘 익은 복숭아.

 

생김새는 나이에 맞지 않게 강단있게 생기었고, 눈매는 서글서글, 성격도 그와 같아,

내게는 뭇 사람들로 부터 너는 곧잘 분리되었다. 너만 보였다.

 

복숭아.

 

 너와 자리를 마주하기전에 난 복숭아 통조림조차 먹지 못했다.

달짝지근한 속살을 탐하고 나면, 어김없이 입술에 핏방울이 맺히도록 긁곤했다.

 

복숭아. 

 

 너를 끌어 안을 때, 네 정수리에선 복숭아 향이 났다. 그 향기에 이끌리듯 끌어안은 네게 입을 맞추었다.

네 혀는 보드라운 복숭아 껍질 같았다.

 

복숭아. 날 간지럽게 하는.

 

네 혀가 훑고 간 자리는 어김없이, 미칠 듯 간지러웠다.

가려움을 넘어 희열에 찬 간지러움. 그 속에 난 절절히, 복숭아를 삼켰다.

 

 

 

 

 

 그리고 먼 훗날 헤어지자는 말을 내 뱉는 남자의 입에선 복숭아 씨 냄새가 났다.

지독히 이기적인,  지독히 아픈, 그런 비린내가 났다.

또 그 남자 앞에선 너의 얼굴은 창백했다. 철 지난 복숭아처럼 핼쓱했다.

아무 대답없이 돌아 떠란 자리엔 복숭아씨 냄새만 오도카니 서있다.

 입 안이 가려웠다. 미칠듯이 가려웠다.

지난 날, 네 혀가 훑고간 자리가, 잇마디 하나하나가 쓰라린듯 아렸다.

 볼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났다. 피를 삼키었다. 비린내를 삼키었다.

그리고 빈 입에 속으로 외쳤다.

미안, 미안...

 후일을 기약않는 혓바닥은 역겨운, 비린내 나는 단어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듯, 괴로움에 사무치듯,

사지를 비틀었다.

침으로 고이는 비린내. 피할 수 없는.

 

내게 복숭아 알러지가 있던것은 언제부터인가.

과거 유년시절에서 부터 인지. 어쩌면 애초에 알러지 따윈 없었는지.

알러지가 사라진 것도, 생긴 것도 모두 너 때문이었던가.

 

네가 떠나간 그 날 이후로 복숭아는 파랗게 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