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er_ 2014. 12. 15. 19:34

1-
봉하에를 다녀왔다. 궂은 날인데 손이 많았다. 묘역에 채 숨 죽지 않은 흰 국화들이 가지런했다. 나도 하나를 더하고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많이 내렸다.

2-
성남이를 보내러 나갔다. 버스정류장에 미처 닿기도 전에 버스가 달려왔고 둘은 눈을 맞으며 정류장으로 내달렸다. 결국 손을 들어 겨우 버스를 잡아탔다. 12월의 마을 버스. 부옇게 김이 서린 창은 눈보라치는 밖과 습기찬 차 안을 나눈다. 사방이 흐린 창, 시골 노인들의 쿰쿰한 체취와 쿨럭이는 소리, 눅눅하고 다스운 공기는 '사평역에서' 같다. 시는 소설로 다시금 표현되기도 했다. 내가 본 풍경도 나 말고 다른 글쟁이가 봤다면 꼭, 달리 쓰였을 테다.

3-
성남이를 보내고 터미널에서 썩 떨어진 편의점에 따듯한 음료를 사러갔다. 사서 돌아오는데 앞서가는 여학생의 치마가 많이 짧다. 마치 산 듯 스스로 오르는 치마를 잡아내리며 위태롭게 걷는데 다리가 발갛게 얼었다. 보고 내가 다 추워 몸을 터는 차에 그이를 스쳐지나는 할머니가 한마디한다. 아이고 얼어죽겠네.

4-
마을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하늘에 군데군데 파란 구멍이 뚫리더니 눈대신 이슬비가 내린다. 차 안은 역시 '시'같아서 이상은의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전화기엔 Lost Stars밖에 없다. 마을 어귀에 내려 걷는데 낡은 포터가 옆에 선다. 할아버지가 태워준다. 좋게 보자면 궂은 날의 젊은 여행객(인 듯한)에 대한 호의일 것이다. 본능같은, 비판적인 눈으로 보자면 비수기의 민박에 방 하나 채울 요량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왕지사 전자라 여기니 마음이라도 따듯하다. 집에 왔는데 날이 썩 추운지 개도 자기 집 밖으로 뛰쳐나오지를 않는다. 그때 즈음 비가 얼은 것인지 눈 대신 우박이 내린다. 뒷마당 대밭에 쏟아지는 소리가 시원하다.